크레는 흑백 사진에도 똑같이 반응할까? 게코 3종의 색각을 실험한 논문
사육장을 꾸밀 때 화려한 색의 장식품을 넣어주면 크레가 더 관심을 보일까요? 미국 사우스앨라배마대·조지메이슨대·링컨대 등 국제 공동 연구팀(Katlein, Ray, Wilkinson, Claude, Kiskowski, Wang, Glaberman, Chiari)이 크레(Correlophus ciliatus)와 레오파드게코(Eublepharis macularius), 골드더스트데이게코(Phelsuma laticauda) 세 종에게 컬러 사진과 흑백 사진을 보여주고 반응을 비교한 논문에 그 답이 있어요. 학술지 Journal of Zoology 317권 2호(2022년)에 실렸고, 온라인에는 2022년 4월 18일 먼저 공개됐어요.

저희 블로그에서 예전에 크레와 레오파드게코가 낯선 물건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리고 그때 스트레스 호르몬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다룬 논문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요(스페인 연구팀, 실물 장난감을 사육장에 넣는 실험이었어요), 이번 논문은 비슷한 질문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파고들어요. “물건 자체”가 아니라 “색깔이라는 시각 정보 하나”만 떼어내서, 그게 반응에 영향을 주는지를 실험한 거예요.
게코는 사실 색을 볼 수 있는 동물이에요
전문적으로 설명하면, 게코의 눈은 원추세포(cone, 밝은 곳에서 색을 구별하는 광수용체)가 막대세포(rod, 어두운 곳에서 명암만 구별하는 광수용체)로부터 진화한 독특한 구조예요. 쉽게 말하면, 원래 낮에 활동하던 조상 도마뱀의 “색을 보는 눈”을 물려받은 채로 야행성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대부분의 게코는 어두운 곳에서도 색을 구별할 수 있는 드문 능력을 갖고 있다는 뜻이에요. 실제로 게코는 초록·파랑·보라(자외선 근처) 파장에 각각 민감한 세 종류의 광수용체를 가진 삼색형(trichromatic) 색각 동물로 알려져 있어요.
크레를 포함한 게코 종 대부분은 야행성 또는 박명박모성(crepuscular, 해뜰녘·해질녘처럼 어스름한 시간대에 활동하는 성질)이지만, 이 논문에 함께 등장하는 골드더스트데이게코는 이름 그대로 낮에 활동하는 주행성(diurnal) 종이에요. 세 종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 “야행성 게코도 화려한 색을 알아보고 반응할까, 아니면 주행성 게코만 색에 더 민감할까”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요.
실험은 이렇게 진행했어요
연구팀은 미국 사우스앨라배마대에서 세 종의 게코를 같은 방에서 12시간 명암 주기로 길렀어요. 데이게코 사육장에는 자외선(UVB) 램프를 추가로 달아줬고요. 아래는 실험에 쓰인 개체 정보예요.
| 종 | 개체수(수/암) | 서식 형태 | 활동 시간대 | 실험 개체의 출처 |
|---|---|---|---|---|
| 레오파드게코(Eublepharis macularius) | 8(4/4) | 지상성 | 야행성 | 인공 번식 |
| 크레(Correlophus ciliatus) | 8(4/4) | 수상성(나무 위 생활) | 야행성 | 인공 번식 |
| 골드더스트데이게코(Phelsuma laticauda) | 7(2/5) | 수상성(나무 위 생활) | 주행성 | 야생 포획 |

실험은 투명 아크릴과 실리콘으로 만든 빈 수조(30.5 x 61 x 20.3cm)에서 진행했어요. 주행성인 데이게코를 테스트할 때는 방의 조명을 켜둔 채로, 야행성인 크레와 레오파드게코를 테스트할 때는 방의 조명을 끄고 랜턴 하나만 멀리서 은은하게 켜서(약 4-7럭스) 각 종이 실제로 활동하는 밝기 조건과 비슷하게 맞춰줬어요. 실험 시간대도 데이게코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 사이, 크레와 레오파드게코는 오후 5시부터 밤 11시 사이로 각 종의 활동 시간에 맞췄어요.
수조 한쪽 벽에 인쇄된 이미지를 붙여놓고 10분간 반응을 관찰했는데, 이미지는 두 종류였어요. 하나는 “낯익은 대상(familiar)”으로 같은 종의 게코 사진, 다른 하나는 “낯선 대상(novel)”으로 자동차 사진이었어요(게코가 살면서 자동차를 실제로 볼 일은 없으니까요). 그리고 이 두 이미지를 각각 컬러와 흑백 두 버전으로 준비했어요. 전문적으로 설명하면, 흑백(grayscale) 처리는 색상(hue)과 채도(saturation) 정보만 제거하고 명도는 그대로 남기는 방식이에요. 쉽게 말하면 “색깔만 쏙 빼고 밝기는 똑같이 유지한 사진”을 만들어서, 밝기 차이 때문에 반응이 달라지는 걸 막았다는 뜻이에요.
개체마다 이미지 종류(게코 or 자동차), 색상 유무(컬러 or 흑백), 같은 종류 안에서도 다른 개체 사진 2장 등 여러 조합으로 총 16번씩 실험했어요. 게코가 이미지를 향해 혀나 코끝을 대면 “만지기(touching)”, 고개와 눈을 이미지 쪽으로 향하면 “보기(looking)”로 기록했고, 둘 다 “반응(response)”으로 분류했어요. 반대로 이미지가 시야에 들어왔는데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무시하면 “무반응”으로 처리했어요. 이렇게 측정한 지표를 PLT(proportion of time looking and touching, 보거나 만지는 데 쓴 시간의 비율)라고 불러요.
색은 반응 여부에 영향을 주지 않았어요
먼저 “게코가 이미지에 아예 반응했는지(PLT > 0) vs 안 했는지(PLT = 0)”를 통계 모델로 분석했어요. 결과는 명확했어요. 컬러냐 흑백이냐는 반응 여부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어요. 대신 이미지의 내용(게코냐 자동차냐)이 뚜렷한 차이를 만들었는데, 흥미롭게도 세 종 모두 낯익은 같은 종 게코 사진보다 낯선 자동차 사진에 더 자주 반응했어요. 실험한 방(테스트룸), 실험 진행 순서, 실험 날짜 같은 부수적인 요인도 통계적으로 유의미했지만, 종 자체는(레오파드게코든 크레든 데이게코든) 반응 여부에는 큰 차이를 만들지 않았어요.
| 변수 | 반응 여부(반응함 vs 안 함) P값 | 반응 지속시간(PLT) P값 |
|---|---|---|
| 종 | 0.134 (차이 없음) | < 0.001 (데이게코가 더 오래 반응) |
| 색상(컬러 vs 흑백) | 0.410 (차이 없음) | 0.90 (차이 없음) |
| 이미지 종류(게코 vs 자동차) | 0.003 (자동차에 더 자주 반응) | 0.87 (차이 없음) |
| 성별 | 0.108 (차이 없음) | 0.05 (경계선) |
| 이미지 노출 순서 | 0.010 (두 번째 노출에 덜 반응) | 0.13 (차이 없음) |
| 실험한 방 | 0.037 | 0.69 (차이 없음) |
| 실험 날짜(1일차 vs 2일차) | 0.041 (2일차에 덜 반응) | 0.85 (차이 없음) |
(굵게 표시한 값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 P < 0.05예요.)
같은 종류의 이미지를 두 번째로 보여줬을 때는 첫 번째보다 반응이 줄어드는 습관화(habituation, 같은 자극을 반복해서 접하면 반응이 점점 약해지는 현상) 경향도 확인됐어요. 특히 게코 사진을 연달아 두 번 보여줬을 때 두 번째에는 반응이 뚜렷하게 줄었는데(P = 0.002), 자동차 사진은 그런 감소가 없었어요(P = 0.85). 다만 이 습관화 효과는 영구적인 게 아니었어요. 실험 간격을 6주로 벌리자 같은 사진(두 번째 게코 사진)에 대한 반응이 다시 첫 노출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돌아왔어요. 즉 “질려서 반응이 줄었다가도, 시간이 충분히 지나면 다시 새로 느껴진다”는 뜻이에요.
반응한 개체들만 보면, 데이게코가 훨씬 오래 쳐다봤어요
다음으로 “일단 반응한 개체들만 놓고, 얼마나 오래 그 반응이 지속됐는지(PLT > 0인 값들의 크기)”를 따로 분석했어요. 여기서도 색상과 이미지 종류는 지속시간에 영향을 주지 않았어요(위 표 참고). 대신 종에 따른 차이가 아주 크게 나타났는데(P < 0.001), 주행성인 데이게코가 두 야행성 종(크레, 레오파드게코)보다 이미지를 훨씬 오래 쳐다보고 만졌어요. 반면 크레와 레오파드게코, 이 두 야행성 종 사이에는 지속시간 차이가 없었어요.
연구팀은 이 결과를 두고, 야행성 게코보다 주행성 게코가 시각 정보에 더 많이 의존하는 습성과 관련 있을 수 있다고 설명해요. 다만 데이게코만 유일하게 야생에서 포획한 개체였다는 점(다른 두 종은 인공 번식 개체)도 결과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어, 조심스럽게 해석해야 한다고 덧붙였어요.
그런데 왜 색은 상관없었을까
연구팀도 이 결과가 다소 뜻밖이었다고 밝혔어요. 게코가 삼색형 색각을 가진 게 잘 알려져 있는 만큼, 특히 낯익은 같은 종 사진에서는 컬러 쪽에 더 강하게 반응할 거라고 예상했었거든요. 논문은 몇 가지 가능성을 짚어요.
첫째, 이번 실험에서 만든 “컬러 vs 흑백” 구분은 사람 눈 기준으로 설계된 거예요. 색상과 채도만 빼고 명도는 그대로 뒀는데, 이게 사람에게는 “색이 빠진 사진”으로 보여도 게코의 눈(자외선 근처 파장까지 감지하는)에는 애초에 다른 방식으로 보였을 수 있어요.
둘째, 실제 야생 환경에서 색은 움직임이나 냄새 같은 다른 감각 정보와 함께 작동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번 실험은 인쇄된 정지 이미지만 보여줬기 때문에, 색이 원래 발휘하는 효과가 움직임·냄새 같은 다른 자극과 결합돼야만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셋째, 색보다 형태(모양) 자체가 게코의 판단에 더 큰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에요. 실제로 이 논문에서 가장 뚜렷했던 차이는 색이 아니라 “게코 사진이냐 자동차 사진이냐”라는 내용물의 차이였어요. 파충류를 대상으로 이런 식으로 색의 영향만 따로 떼어내 실험한 연구는 이 논문 이전에는 턱수염도마뱀(Pogona vitticeps)을 대상으로 한 연구 한 편뿐이었는데, 그 연구도 “색 정보가 없어도 도마뱀 모양을 도마뱀으로 인식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비슷한 결론을 냈었어요. 이번 논문은 여러 종의 게코를 대상으로 그 결론을 한 번 더 뒷받침한 셈이에요.
크레 사육자에게 주는 시사점
첫째, 사육장 장식품이나 은신처를 고를 때 색깔 자체는 크레의 관심을 끄는 데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요. 이 논문 기준으로는 화려한 색보다 “낯선 모양, 새로운 형태”가 더 크레의 시선을 끄는 요소였어요.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정지된 2D 이미지 실험 결과라, 실제 3D 물건에서는 냄새나 질감 같은 다른 요소가 함께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해요.
둘째, 크레는 흑백이든 컬러든 시각 자극 자체에는 확실히 반응했어요(전체 시행의 상당수에서 이미지를 보고 반응을 보였어요). 앞서 다룬 낯선 물건 논문에서 크레가 레오파드게코보다 새로운 3D 물건 앞에서 더 움츠러드는 경향을 보였던 것과 비교하면, 단순히 “쳐다보고 관심을 보이는” 수준의 반응과 “다가가서 만지거나 탐색하는” 수준의 반응은 서로 다른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어요. 크레가 새로운 대상을 아예 인지하지 못하거나 무시하는 게 아니라, 인지는 하되 접근 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한다는 그림이 더 정확해 보여요.
셋째, 같은 자극을 반복해서 보여주면 반응이 줄어들지만, 몇 주 정도 지나면 다시 새롭게 느껴진다는 습관화 결과는 사육장 환경 강화(enrichment)에도 참고할 만해요. 늘 같은 장식품만 두기보다 몇 주 간격으로 배치나 소품을 바꿔주면, 크레 입장에서는 매번 “새로운 자극”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에요.
넷째, 야행성인 크레가 어두운 곳에서도 원추세포 기반의 색각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로운 지점이에요. 사육장 조명을 고를 때 단순히 밝기만이 아니라, 크레가 색을 구별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염두에 두고 사육 환경을 이해하면 좋을 것 같아요. 다만 이번 논문 결과를 보면 “화려한 색을 넣어줘야 좋아한다”는 식의 확대 해석은 곤란하고, 정확히는 “색을 볼 수는 있지만, 적어도 이런 단순 이미지 반응 실험에서는 색보다 낯섦 자체에 더 크게 반응한다”는 정도로 받아들이는 게 맞아요.
이 글은 아래 원 논문을 직접 읽고 참고문헌까지 확인해서 정리했어요.
출처: Katlein N, Ray M, Wilkinson A, Claude J, Kiskowski M, Wang B, Glaberman S, Chiari Y. “Does colour impact responses to images in geckos?” Journal of Zoology, 2022;317(2):138-146. https://doi.org/10.1111/jzo.12969
본문의 사진(원 논문 Table 1)은 위 논문에서 그대로 가져왔어요. 첫 사진은 The eye of a crested gecko.jpg by Gabriel Zanda, CC BY 4.0을 크롭해서 사용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