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 유전자 지도, 두 번째 팀이 또 완성했어요: 8천만 년 개체수 역사까지
지난 글에서 미국 남가주대(USC) 연구팀이 크레(크레스티드 게코, 학명 Correlophus ciliatus)의 유전체 지도를 완성한 이야기를 전해드렸었죠. 그런데 논문을 더 찾아보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그 논문이 나오고 딱 9일 뒤, 중국 상하이해양대학교·안후이사범대학교 공동 연구팀(Huang, Zhang, Lu, Huang, Li)도 완전히 독자적으로 크레의 유전체 지도를 완성해서 학술지 G3(미국유전학회 발행)에 발표했어요. 두 팀이 서로의 연구를 몰랐을 가능성이 큰, 말 그대로 우연히 겹친 “동시 발견”인 셈이에요.
같은 종의 유전체를 서로 다른 팀이, 서로 다른 장비로 독립적으로 조립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 이번 글에서는 이 두 번째 논문의 내용을 원문·참고문헌까지 확인해서 정리하고, 지난 글에서 다룬 첫 번째 논문과 결과를 나란히 비교해볼게요.
이번 표본은 어디서 왔을까
이번 연구에 쓰인 개체는 중국의 한 반려동물 매장에서 구입한 성체 수컷 크레예요(아래 사진). 연구팀은 근육 조직에서 게놈 해독용 DNA를, 간 조직에서 Hi-C 분석용 DNA를 뽑았고, 유전자 예측의 정확도를 높이려고 근육·심장·피부·간·반음경·폐·척수·혀·정낭·눈·뇌까지 무려 11개 조직에서 RNA를 따로 채취했어요. 지난 글의 USC 논문은 배아 한 개체에서만 RNA를 뽑았는데, 이번 연구는 성체의 다양한 조직을 훑은 게 차이점이에요.

어떻게 지도를 그렸을까
전문적으로 설명하면 이번 팀은 나노포어(Oxford Nanopore) 롱리드 시퀀싱(137.55Gb)과 일루미나 짧은 리드(135.86Gb)를 결합해 초안을 만들고, Hi-C 데이터(206.32Gb)로 염색체 단위 스캐폴딩을 했어요. 지난 글에서 설명한 “직소 퍼즐” 비유를 다시 쓰면, 이번엔 퍼즐 조각을 자르는 도구(나노포어)만 다른 회사 제품을 쓴 셈이에요. 총 시퀀싱 데이터양은 549.94Gb로, 사람 게놈(약 3Gb)을 수백 번 다시 읽을 수 있는 방대한 양이에요.
여기서도 오염 해프닝이 있었어요. 조립된 조각(스캐폴드) 중 9개가 사람(Homo sapiens), 고릴라(Gorilla gorilla), 그리고 코뿔새사촌인 무스새(Colius striatus) 등에서 온 것으로 의심돼 최종 지도에서 제외했어요. 실험 과정에서 연구자의 DNA나 실험실 공기 중 오염이 섞여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데, 지난 글의 USC 논문에서도 세균(방선균) 오염이 발견됐던 걸 생각하면, 유전체 조립에서 이런 이물질 제거 작업은 거의 필수 코스인 모양이에요.
두 지도를 나란히 놓고 비교해보면
같은 종을 다룬 두 논문의 핵심 수치를 표로 정리했어요.
| 지표 | USC팀(Gigabyte, 11월 6일) | 중국팀(G3, 11월 15일) |
|---|---|---|
| 전체 유전체 크기 | 1.65 Gb | 1.66 Gb |
| 스캐폴드 N50 | 109 Mb | 109.97 Mb |
| 염색체(19개)에 배치된 비율 | 99.54% | 99.52% |
| GC 함량 | 45% | 45.01% |
| 예측된 단백질 코딩 유전자 수 | 30,780개 | 21,065개 |
| 반복서열 비율 | 40.41% | 41.98% |
| 이형접합률 | 약 0.51% | 약 0.616% |
| BUSCO 완성도 | 99.6%(eukaryota_odb10, 255개 기준 유전자) | 90.3%(sauropsida_odb10, 7,480개 기준 유전자) |
전체 크기·N50·염색체 배치 비율·GC 함량은 거의 똑같아요. 이게 왜 중요하냐면, 완전히 다른 시퀀싱 장비(PacBio vs. 나노포어)와 다른 조립 프로그램을 쓴 두 팀이 독립적으로 거의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는 뜻이거든요. 서로 다른 방법으로 같은 답이 나왔으니, 크레 게놈이 실제로 1.65-1.66Gb 크기에 19개 염색체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이제 상당히 믿을 만하다고 볼 수 있어요.
반면 유전자 수(30,780개 vs 21,065개)와 BUSCO 완성도(99.6% vs 90.3%)는 차이가 꽤 커요. 이것만 보면 한쪽이 훨씬 부실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엇을 기준으로 쟀는지”가 다른 탓이 커요. BUSCO는 “어떤 생물이든 거의 예외 없이 갖고 있을 유전자 목록”과 대조해 완성도를 매기는 검사인데, USC팀은 진핵생물 전체를 아우르는 아주 헐렁한 기준(eukaryota_odb10, 255개 유전자)을, 중국팀은 파충류 전용의 훨씬 빡빡한 기준(sauropsida_odb10, 7,480개 유전자)을 썼어요. 시험 문제 수가 30배 가까이 차이 나는 셈이니 점수를 그대로 비교하긴 어려워요. 오히려 훨씬 어려운 시험에서 90.3%를 받은 거라 나쁘지 않은 성적이에요. 유전자 수 차이도 비슷한 이유예요. 유전자 예측은 RNA 증거를 얼마나 폭넓게 넣었는지, 최종 필터링 기준을 얼마나 엄격하게 잡았는지에 따라 결과가 꽤 달라져요. 같은 생물이라도 팀마다, 방법마다 숫자가 다르게 나오는 건 유전체학에서 흔한 일이에요.

이번 논문의 염색체 지도(Figure 3)예요. 지난 글에서 본 USC팀 지도와 원리는 같지만, 이번 건 각 염색체에 Chr1부터 Chr19까지 번호가 매겨져 있어서 훨씬 보기 편해요. 대각선을 따라 늘어선 19개의 파란 사각형이 각각 하나의 염색체예요.
연구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크레의 염색체를 뉴칼레도니아 근처에 사는 다른 게코인 Townsend 드워프 게코(Sphaerodactylus townsendi)와 맞대어 비교했어요(계통을 그린 나무 그림도 함께 실었는데, 다른 파충류 14종과 거북 1종까지 포함해 크레의 진화적 위치를 확인했어요). 그 결과 염색체가 합쳐지거나 갈라진 흔적을 3곳에서 발견했는데, 예를 들어 크레의 5번과 19번 염색체가 상대 종에서는 한 염색체로 뭉쳐 있는 식이에요. 오랜 세월 진화하면서 염색체가 재배열됐다는 증거예요.
8천만 년 전 대륙 분리부터 이어지는 개체수 역사
이번 논문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여기예요. 연구팀은 PSMC라는 기법으로 크레의 과거 개체수 변화를 추정했어요. 전문적으로 설명하면, 한 개체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두 벌의 염색체 사이에 남은 차이(이형접합 패턴)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분포하는지를 분석해서, 옛날에 그 종의 개체수가 많았는지 적었는지를 거꾸로 추정하는 방법이에요. 쉽게 말하면 가계도를 거슬러 올라가며 “이 시기엔 친척이 많았을까 적었을까”를 유전자 흔적만으로 추리하는 유전학판 타임머신인 셈이에요.

그래프를 보면 이런 흐름이 보여요. 약 1억 년 전부터 개체수가 점점 늘어 700만 년 전 무렵 정점을 찍어요. 이 시기는 백악기 후기(약 8천만 년 전) 뉴칼레도니아를 포함한 초대륙 질란디아(Zealandia)가 호주에서 갈라져 나와 고립된 시기와 맞물려요. 섬처럼 고립된 환경에서 천적이나 경쟁자가 적어 개체수가 늘어나기 좋은 조건이었을 것으로 추정돼요. 이후로는 개체수가 계속 줄어드는데, 연구팀은 플라이오세 후기(약 300만 년 전)부터 홍적세 내내 지구가 약 20차례나 반복한 빙하기-간빙기 기후 변동을 원인으로 보고 있어요. 그러다 약 30만 년 전부터 다시 개체수가 회복되기 시작해서, 약 10만 년 전 지금과 비슷한 안정 상태에 이르렀어요.
다만 연구팀 스스로도 이 방법의 한계를 밝혔어요. PSMC는 아주 먼 과거(1억 년 전 근처)와 아주 최근(1만 년 이내)의 해상도가 떨어지고, 다른 개체군과 유전자가 섞이는(혼혈) 사건은 아예 포착하지 못해요. 그러니 큰 흐름은 참고할 만하지만, 세부 시점이나 정확한 수치까지 곧이곧대로 믿기보다는 “대략 이런 굴곡이 있었다” 정도로 받아들이는 게 맞아요.
앞으로는
논문은 크레가 앞으로 CRISPR-Cas9 같은 유전자 편집 실험에도 좋은 후보가 될 거라고 내다봤어요. 이미 2019년 근연 도마뱀인 브라운아놀(Anolis sagrei)의 미수정란에 CRISPR 유전자 편집을 적용한 사례가 있었는데, 크레는 사육이 훨씬 쉽고 번식력도 좋아서 비슷한 실험에 더 적합하다는 거예요. 정밀한 유전체 지도가 있으니 이제 감각기관 구조나(지난 글에서 다룬) 꼬리 재생 능력처럼 크레 특유의 흥미로운 형질들을 분자 수준에서 직접 검증할 길이 열린 셈이에요.
정리하면, 이번 논문으로 크레는 염색체 단위 유전체를 가진 게코 4번째 과(科)가 됐어요(크레가 속한 딥로닥틸리과, Diplodactylidae 기준). 그리고 서로 다른 두 팀이 독립적으로 거의 같은 크기·구조의 지도를 완성했다는 사실 자체가, 크레의 유전체 지도가 이제 여러 후속 연구의 확고한 기초 자원이 됐다는 걸 보여줘요.
이 글은 아래 원 논문을 직접 읽고 참고문헌까지 확인해서 정리했어요.
출처: Huang R, Zhang J, Lu L, Huang S, Li C. “High-quality genome assembly and annotation of the crested gecko (Correlophus ciliatus).” G3: Genes, Genomes, Genetics, 2025;15(2):jkae265. https://doi.org/10.1093/g3journal/jkae265
본문 이미지(Figure 1, 3, 6)는 위 논문에서 그대로 가져왔으며, 원 논문이 CC BY 4.0 라이선스로 공개돼 있어 출처 표기 조건 하에 재사용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