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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의 성별은 엄마가 정한다? 현미경으로도 안 보이는 성염색체를 찾아낸 논문

사람은 성염색체가 XX(여성)냐 XY(남성)냐로 성별이 갈려요. 그런데 크레(크레스티드 게코, 학명 Correlophus ciliatus)도 똑같은 방식일까요? 미국 미네소타대를 중심으로 한 국제 공동 연구팀(Gamble, Coryell, Ezaz, Lynch, Scantlebury, Zarkower)이 게코 12종의 DNA를 대량으로 읽어 성별을 가르는 유전자 표지를 찾아낸 논문에 그 답이 있어요. 학술지 Molecular Biology and Evolution에 2015년 실렸고, 이 논문에서 크레도 다뤄졌어요.

정면에서 본 크레 얼굴 클로즈업. 속눈썹 모양의 눈 위 돌기와 앞발가락이 함께 보인다
사진: Michael McConville, CC BY 4.0

파충류 성별 결정은 사람과 다르다

전문적으로 설명하면, 이 논문이 다루는 성별 결정 방식은 대표적인 세 가지예요. 첫째는 우리에게 익숙한 XY 방식(웅성이형배우자, male heterogamety)으로, 수컷이 서로 다른 두 성염색체(X와 Y)를 갖고 암컷은 같은 염색체(X와 X)를 갖는 방식이에요. 둘째는 그 반대인 ZW 방식(자성이형배우자, female heterogamety)으로, 새와 나비 등에서 흔한데 이번엔 암컷이 서로 다른 두 염색체(Z와 W)를, 수컷이 같은 염색체(Z와 Z)를 가져요. 셋째는 아예 염색체가 아니라 알이 발달하는 동안 놓여 있던 온도로 성별이 정해지는 온도의존성 성결정(TSD, temperature-dependent sex determination)이에요. 쉽게 말하면, XY는 “아빠가 자식의 성별을 결정”하고 ZW는 “엄마가 자식의 성별을 결정”하며, TSD는 “알이 발달한 온도가 성별을 결정”하는 방식이라고 보면 돼요.

이 셋이 동물 전체를 남김없이 나누는 분류표는 아니에요. 성염색체가 여러 개인 경우, 여러 유전자가 함께 관여하는 경우, 유전과 온도가 같이 작용하는 경우도 있어요. 이 논문 자체도 “온도 때문에 성이 뒤집히는 동형 성염색체” 같은 중간 형태가 있을 수 있다고 짚어요. 다만 이 논문이 계통수 위에 올려서 세는 상태는 위의 세 가지고, 이 글도 그 범위를 따라가요.

문제는 파충류 중 상당수가 이 셋 중 무엇에 해당하는지조차 모른다는 거예요. 이유는 간단한데, 사람의 Y염색체처럼 크기나 모양이 확 다르면 현미경으로 금방 알아볼 수 있지만(이형, heteromorphic), 많은 파충류는 성염색체 두 개가 크기와 모양이 거의 똑같아서(동형, homomorphic) 현미경으로 봐도 구분이 안 돼요. 그래서 이 논문은 현미경 대신 DNA 자체를 비교하는 방법을 썼어요.

RAD-seq: 현미경 대신 DNA로 성별 표지를 찾는 기술

전문적으로 설명하면, 이 연구는 RAD-seq(Restriction site-Associated DNA sequencing, 제한효소절단부위연관 DNA 시퀀싱)이라는 기법을 썼어요. 특정 제한효소로 게놈 DNA를 일정한 자리마다 잘라서, 그 주변 서열만 대량으로 읽어내는 방식이에요. 쉽게 말하면, 게놈 전체를 다 읽는 대신 정해진 위치들만 콕콕 찍어서 저렴하고 빠르게 비교하는 방법이에요.

연구팀은 종마다 성별이 확실한 수컷 여러 마리와 암컷 여러 마리를 개체별로 RAD-seq으로 읽은 다음, “한쪽 성별에서만 나타나고 반대쪽 성별에는 전혀 없는” DNA 조각을 컴퓨터로 찾아냈어요. 이런 조각이 수컷에서만 나오면 그 종은 XY 시스템(그 조각이 Y염색체에 있다는 뜻), 암컷에서만 나오면 ZW 시스템(그 조각이 W염색체에 있다는 뜻)이라고 추정할 수 있어요.

여기서 중요한 게, 컴퓨터가 뽑아낸 후보에는 위양성(false positive)이 많이 섞여 있다는 점이에요. 성별과 아무 상관 없는 개체 간 차이가 우연히 한쪽 성에만 몰려도 후보로 잡히거든요. 논문은 표본 수가 적을수록 이런 후보가 더 늘어난다고 설명해요. 그래서 후보 중 일부를 골라 PCR(중합효소연쇄반응)로 실제 개체들에 다시 걸어 보고, 성별대로 깔끔하게 갈리는 것만 “검증된 표지”로 인정했어요. 아래에 나오는 숫자들을 볼 때 후보 개수와 검증된 개수를 구분해서 봐야 하는 이유가 이거예요.

크레는 ZW, 그것도 핵형으로는 안 보이는 ZW였다

결과부터 말하면, 크레는 ZW 시스템(암컷이 서로 다른 두 성염색체를 가짐)이었어요. 수컷 6마리, 암컷 7마리를 분석했더니 암컷에서만 나타나는 후보 표지가 57개 나왔고, 수컷에서만 나타나는 후보는 0개였어요. 이 중 22개를 PCR로 시도해 4개가 실제로 암컷에서만 증폭되는 것으로 검증됐고요.

ZW라는 판정의 핵심 근거는 “암컷 특이 표지가 여러 개 나왔고 그중 일부가 실험으로도 확인됐다”는 쪽이에요. 수컷 특이 표지가 하나도 안 나온 건 그 판정과 방향이 맞는 결과이긴 하지만, 그것만 놓고 ZW를 확정할 수는 없어요. 표본 수, 제한효소가 자르는 자리의 분포, 시퀀싱 깊이에 따라 실제로 존재하는 표지를 놓칠 수도 있으니까요.

한편 크레의 성염색체가 현미경으로 봐서는 구분되지 않는 동형(homomorphic) 염색체라는 건, 이번 RAD-seq 연구가 직접 확인한 사실이 아니에요. 2011년 Pokorná 연구팀이 발표한 염색체 연구에서 크레의 핵형에 형태가 다른 성염색체 쌍이 관찰되지 않았다는 결과가 근거예요. 두 연구를 합치면 “성염색체는 분명히 있는데(ZW), 일반적인 핵형 분석으로는 형태만 보고 가려낼 수 없다”가 되는 거죠.

아래 그림은 이 논문의 결과를 한 장에 모은 거예요. 왼쪽(A)은 성 결정 방식이 알려진 게코들의 계통수인데, RAD-seq으로 분석한 12종만이 아니라 기존 문헌으로 방식이 알려진 종들도 함께 올라가 있어요. 회색은 TSD, 하늘색은 XY, 주황색은 ZW를 뜻해요. 예를 들어 레오파드게코(Eublepharis macularius)는 이 계통수에 회색(TSD)으로 올라가 있는데, 기존에 알려진 자료로 올라간 것이고 RAD-seq으로 분석한 12종에는 들어 있지 않아요. 가운데(B)는 RAD-seq으로 분석한 12종의 사진이고, 오른쪽(C)은 각 종의 성별 특이 표지를 PCR로 증폭한 젤 사진이에요. 크레(Correlophus ciliatus) 줄을 보면 계통수에 주황색 원으로 표시돼 있고, “CC9771″이라고 적힌 젤 사진에서 수컷 칸은 밴드가 거의 안 보이는데 암컷 칸마다 뚜렷한 밴드가 하나씩 보여요. 이게 바로 “암컷에서만 검출되는 DNA 조각”을 실험으로 눈에 보이게 확인한 장면이에요.

성 결정 방식이 알려진 게코들의 계통수(A), RAD-seq으로 분석한 12종의 사진(B), 각 종의 성별 특이 PCR 표지 젤 사진(C). 회색은 온도의존성 성결정(TSD), 하늘색은 XY, 주황색은 ZW를 뜻한다
출처: Gamble et al. 2015, Molecular Biology and Evolution, Fig. 2

RAD-seq으로 분석한 12종의 결과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아요.

종 분석 개체수(수/암) 후보 표지(수컷 특이/암컷 특이) 성 결정 시스템 PCR 시도/검증 이전 핵형 연구 결과
크레(Correlophus ciliatus) 6 / 7 0 / 57 ZW 22 / 4 동형(형태가 다른 성염색체 관찰 안 됨), Pokorná et al. 2011
Lialis burtonis 5 / 3 21 / 345 XY 4 / 1 XY 확인, Gorman and Gress 1970
Aristelliger expectatus 7 / 7 0 / 10 ZW 9 / 2 발표된 핵형 없음
Sphaerodactylus nicholsi 7 / 7 158 / 7 XY 14 / 1 발표된 핵형 없음
Sphaerodactylus macrolepis 7 / 9 157 / 0 XY 16 / 2 발표된 핵형 없음
Thecadactylus rapicauda 9 / 5 2 / 11 ZW 11 / 3 ZW 확인, Schmid et al. 2014
Gehyra mutilata 7 / 7 2 / 41 ZW 20 / 3 발표된 핵형 없음
Hemidactylus mabouia 6 / 6 14 / 0 XY 13 / 1 동형(형태가 다른 성염색체 관찰 안 됨), McBee et al. 1987
Hemidactylus turcicus 7 / 7 33 / 2 XY 21 / 4 동형(형태가 다른 성염색체 관찰 안 됨), Branch 1980; Trifonov et al. 2011
Hemidactylus frenatus 9 / 7 0 / 6 ZW 6 / 1 동형(형태가 다른 성염색체 관찰 안 됨), King 1978; Trifonov et al. 2011
Heteronotia binoei 5 / 7 2 / 113 ZW 17 / 1 ZW 확인, Moritz 1984
Christinus marmoratus 6 / 6 32 / 855 ZW 13 / 2 ZW 확인, King and Rofe 1976

표에서 Lialis burtonis를 보면 왜 후보 숫자만 보면 안 되는지 바로 드러나요. 암컷 특이 후보가 345개나 되는데 결론은 XY거든요. 논문은 이걸 이 종의 표본이 가장 적고(수컷 5마리, 암컷 3마리) 암수 수가 불균형했던 탓에 생긴 위양성으로 설명해요. 검증을 통과한 표지는 수컷 특이 표지 1개였고요.

RAD-seq으로 분석한 이 12종 가운데 8종은 성 결정 방식이 이 논문에서 처음으로 밝혀졌어요. 나머지 4종(Lialis burtonis, Heteronotia binoei, Thecadactylus rapicauda, Christinus marmoratus)은 이미 핵형 연구로 알려져 있던 결과를 RAD-seq이 다시 확인해 준 경우예요. 그리고 처음 밝혀진 8종 중 4종은 예전에 핵형이 찍힌 적이 있는데도 형태가 다른 성염색체가 보이지 않았던 종들인데, 크레가 바로 그 4종 중 하나예요. 나머지 4종은 발표된 핵형 자체가 없었고요.

게코는 성별 결정 방식을 유난히 자주 바꿔온 그룹이었다

이 논문의 더 큰 발견은 계통수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드러나요. 연구팀이 확률 모델로 계산해보니, 도마뱀·뱀의 공통 조상은 TSD(온도의존성 성결정)였고 이후 여러 갈래에서 독립적으로 XY 또는 ZW 염색체가 새로 생겨난 것으로 복원됐어요. 게코 그룹 안에서만 17-25회 전환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고요. 이는 도마뱀·뱀을 통틀어 세어진 전체 전환 횟수의 절반에서 3분의 2에 해당하는 수치인데, 게코가 전체 도마뱀·뱀 종수의 16% 정도(9,671종 중 1,579종)밖에 안 되는 걸 감안하면 몫에 비해 압도적으로 잦은 셈이에요.

심지어 아주 가까운 근연종끼리도 시스템이 다른 경우가 있었어요. 예를 들어 Hemidactylus 속에서 H. turcicus와 H. mabouia는 XY인데 H. frenatus는 ZW였고, Sphaerodactylus 속 2종은 XY인데 근연속 Aristelliger는 ZW였어요. 연구팀은 이걸 “성염색체가 생긴 지 얼마 안 됐을 때는(즉 아직 심하게 퇴화하지 않았을 때는) 다른 시스템으로 전환될 여지가 남아있다”는 가설로 설명해요. 반대로 포유류나 조류처럼 아주 오래 전에 성염색체가 고정된 그룹은 이런 전환이 거의 일어나지 않고요.

게코에서 전환이 유난히 많은 이유로 연구팀이 든 건, 게코 무리가 다른 도마뱀 그룹들보다 늦게까지 TSD를 유지한 채로 분화해 왔다는 점이에요. 다만 이건 계통수 위에서 확률 모델로 복원한 결과를 놓고 세운 진화적 가설이지, 각 계통에서 성염색체가 실제로 언제 생겼는지를 직접 측정한 결과는 아니에요. 논문 스스로도 게코의 성 결정 방식이 확실하게 알려진 종은 전체 게코의 3%도 안 된다고 밝히고 있어요. 참고로 지금도 부화 온도로 성별이 정해지는 게코가 있는데, 그쪽 이야기는 부화 온도로 성별이 갈리는 게코 글에서 따로 다뤘어요.

크레 사육자에게 주는 시사점

첫째, 크레는 유전적으로 “엄마가 자식의 성별을 결정하는” ZW 시스템이에요. 암컷이 Z와 W 중 어느 쪽을 알에 넣느냐로 새끼의 성별이 갈린다는 뜻이죠. 사람이나 개·고양이 같은 포유류(아빠가 성별을 결정하는 XY)와는 정반대라는 걸 알아두면 재미있는 상식이 될 것 같아요.

둘째, 이 논문에서 확인한 표지는 연구용이고 현재 사육자가 이용할 수 있는 검증된 DNA 성감별 서비스는 확인되지 않았어요. 실제 사육에서는 개체가 충분히 자란 뒤 전총배설강 구멍(precloacal pores)과 반음경 돌출부(hemipenal bulge)를 보고 성별을 구분해요. 해외 사육 자료에서는 보통 15-20g 무렵부터 다시 확인해 보라고 하지만, 이 무게는 암컷을 확정하는 기준선이 아니에요. 구멍과 돌출부가 보이지 않으면 “암컷”이 아니라 “미확정”으로 기록하고 더 자란 뒤 다시 확인하는 편이 좋아요. 부위와 암수 차이는 크레 몸 구조를 정리한 글의 확대 사진에서 볼 수 있어요.

성염색체 말고 생식소 자체가 언제 암수로 갈라지기 시작하는지가 궁금하다면 크레 배아의 생식소를 조직학으로 들여다본 글도 함께 보시면 좋아요.


이 글은 아래 원 논문을 직접 읽고 참고문헌까지 확인해서 정리했어요.

출처: Gamble T, Coryell J, Ezaz T, Lynch J, Scantlebury DP, Zarkower D. “Restriction Site-Associated DNA Sequencing (RAD-seq) Reveals an Extraordinary Number of Transitions among Gecko Sex-Determining Systems.” Molecular Biology and Evolution, 2015;32(5):1296-1309. https://doi.org/10.1093/molbev/msv023

본문의 그림(Fig. 2)은 위 논문에서 그대로 가져왔어요. 첫 사진은 crestedgecko-04-face-macro.webp by Michael McConville, CC BY 4.0 (첫 글에서 사용한 사진을 다시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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