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파드게코는 두 달 전 배운 길을 기억할까: 물미로 실험으로 본 파충류의 장기기억
먼저 분명히 밝히고 시작할게요. 오늘 다룰 논문은 크레(크레스티드 게코, Correlophus ciliatus)가 아니라 레오파드게코(Eublepharis macularius)를 대상으로 한 연구예요. 크레와 레오파드게코는 둘 다 사육 인구가 많은 도마뱀붙이류라는 공통점이 있을 뿐, 계통적으로는 서로 다른 속에 속한 별개의 종이에요. 그러니 이 글에서 나오는 수치나 결론을 곧바로 크레에게 적용할 수는 없어요. 다만 “파충류가 길을 얼마나 오래 기억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 자체는 크레를 키우는 분들에게도 흥미로운 주제라서, 열린 질문으로 남겨두고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 싶어 골랐어요.
논문은 체코 카렐대학교(Charles University) 동물학과의 에바 란도바(Eva Landová) 연구팀이 쓴 “Memory in Leopard Geckos (Eublepharis macularius) in a Morris Water Maze Task”로, 학술지 Animals 15권 14호(2025년 7월 8일 게재, 논문 번호 2014)에 실렸어요. 오픈 액세스(CC BY 4.0)라 원문 그림도 그대로 가져와 실었어요. DOI는 10.3390/ani15142014예요.
핵심 질문은 이거예요. 레오파드게코가 물속에서 숨겨진 발판을 찾아가는 길을 학습했다면, 그 기억은 얼마나 오래갈까요? 결과부터 말하면, 학습이 끝나고 두 달 뒤에도 관측값상으로는 훈련 막바지와 비슷한 성적으로 발판을 찾아갔지만, 거기서 넉 달이 더 지나 총 여섯 달째가 되자 경로 길이가 첫 훈련 첫머리와 구별되지 않았고, 발판을 찾기까지 걸린 시간은 오히려 그때보다도 길어졌어요. 다만 이 결과를 어디까지 “기억이 사라졌다”로 읽을 수 있는지는 통계를 조금 뜯어봐야 해서, 뒤에서 표까지 같이 보면서 짚을게요.

물미로 실험이란 무엇인가
“물미로(Morris water maze, MWM)”는 원래 쥐의 공간 학습을 연구하려고 1980년대에 만들어진 실험 도구예요. 물을 채운 둥근 수조 안에 물에 잠겨 안 보이는 발판을 하나 숨겨두고, 동물이 그 발판의 위치를 눈에 보이는 단서(벽에 붙은 무늬나 방 안의 사물 등)를 이용해 기억해서 찾아가도록 훈련시키는 방식이에요. 헤엄쳐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되고, 바닥에 남는 냄새 자국이나 온도 차이 같은 단서는 물속이라 거의 통하지 않아요. 그래서 화학 단서와 온도 단서의 이용을 크게 제한하고, 눈에 보이는 단서에 기대어 길을 찾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이 장치의 장점이에요. 다만 물에서 헤엄치는 성적에는 시각 기억 말고도 그날의 의욕, 운동 능력, 스트레스 반응 같은 것이 함께 섞여 들어와요. 실제로 이 논문에서도 그 문제가 결과 해석에 계속 따라붙는데, 뒤에서 다시 이야기할게요.
연구팀은 이 장치를 레오파드게코 같은 작은 파충류에 맞게 축소해서 썼어요(Figure 1). 검은색 플라스틱 수조는 지름 51cm(생쥐용 수조의 절반 크기)이고, 그 안에 지름 9cm짜리 투명 플라스틱 원통을 발판으로 넣어뒀어요. 발판은 수면에서 2cm 아래에 잠기게 했고(물 전체 높이는 21.5cm), 물 온도는 28±1도로 맞췄어요. 수조 가장자리에는 동서남북 네 방향에 각기 다른 흑백 도형 무늬를 붙여서(N, S, E, W) 게코가 방향을 가늠할 단서로 삼게 했고요. 수조 밖의 벽이나 문처럼 방 안에 있는 더 멀리 있는 단서도 이용할 수 있었어요. 실험 전체는 천장에 고정한 캠코더로 촬영했어요.

레오파드게코는 원래 후각(화학적 신호)에 크게 의존하는 동물이에요. 같은 종을 알아보거나 뱀 허물 냄새로 포식자를 감지하는 것도 후각의 몫이 크다는 사실이 이 연구팀의 이전 연구(Landová 등, 2021)에서도 확인된 바 있어요. 물미로는 이 후각 단서의 이용을 크게 제한하기 때문에, 평소 냄새에 크게 기대는 이 종이 눈에 보이는 단서를 주로 이용해 공간을 학습할 수 있는지 시험하기에 적합한 도구였던 셈이에요.
실험 설계: 학습부터 두 번의 기억 테스트까지
실험 동물은 2-5세 성체 레오파드게코였고, 대부분 암컷(41마리)에 수컷 1마리가 섞여 있었어요. 실험 개체군에는 실험실에서 태어난 개체와 파키스탄 야생에서 채집한 개체의 1-2세대 자손이 함께 포함됐어요. 알은 28.5±0.5도에서 부화시켰어요. 레오파드게코는 부화 온도로 성별이 정해지는 온도의존성 성 결정 종인데, 이 온도는 논문 표현대로 “암컷이 알을 낳을 자리로 선호하는 온도(약 29도)”에 가까우면서 암컷이 많이 나오고 부화 성공률도 좋은 조건이에요.
여기서 성비를 맞추려 한 게 아니라 일부러 암컷 쪽으로 몰았다는 점이 중요해요. 저자들이 밝힌 이유는 두 가지예요. 하나는 부화 온도가 파충류의 뇌 발생과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보고가 여럿 있어서 개체마다 부화 조건이 제각각인 상황을 피하려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력권 다툼을 하지 않는 암컷 쪽이 이런 실험에 적합하다고 봤기 때문이에요. 뒤집어 말하면 표본이 암컷 41마리에 수컷 1마리라서, 이 논문의 결과를 수컷이나 이 종 전체로 곧바로 일반화할 수는 없어요. 암수 차이를 비교하는 것도 애초에 불가능한 설계예요.
처음에는 56마리로 훈련을 시작했지만, 일부 개체가 능동적으로 헤엄치지 않고 물 위에 가만히 떠 있기만 하는 “부동 전략”을 택하는 바람에 이런 개체는 나무 막대로 꼬리 밑동을 살짝 건드려 포식자의 공격을 흉내 내는 자극을 줬어요(이 터치 횟수도 데이터로 기록했고, 터치가 많을수록 발판을 찾으려는 의지가 낮다는 뜻으로 해석했어요). 이런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42마리(암컷 41, 수컷 1)가 첫 번째 훈련과 첫 기억 테스트를 마쳤고, 그중 28마리(암컷 27, 수컷 1)를 무작위로 뽑아 두 번째 기억 테스트까지 진행했어요.
전체 일정은 Figure 2 그대로예요. 첫 훈련(training phase)은 20회 시행으로 이뤄졌고, 한 시행은 최대 8분, 일주일에 한 번씩 진행했어요(그러니까 훈련 하나를 다 마치는 데만 20주, 거의 다섯 달이 걸린 셈이에요). 통계 분석을 위해 처음 3회 시행을 “S-훈련”(Start), 마지막 3회 시행을 “F-훈련”(Finish)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게코는 매번 네 방향(N·S·E·W) 중 한 곳에서 놓아졌는데, 완전 무작위가 아니라 20회 동안 각 방향이 5회씩 배정되는 준무작위였어요. N과 W는 발판까지 가까운 “짧은” 출발점, S와 E는 먼 “긴” 출발점이라 이 차이도 분석에 반영했고요.
훈련이 끝나고 두 달 뒤에 첫 번째 기억 테스트(Memory test 1)를 했어요. 3회 시행, 최대 8분씩이에요. 그리고 여기서 다시 넉 달이 더 지나(즉 첫 훈련이 끝난 지 총 여섯 달째) 두 번째 기억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이번엔 곧바로 테스트만 한 게 아니라 재훈련(retraining) 30회 시행으로 구성했어요. 이 재훈련의 처음 3회를 “S-기억테스트2”, 마지막 3회를 “F-기억테스트2″라고 불렀어요.

측정한 값은 세 가지였어요. 발판을 찾기까지 걸린 시간(레이턴시, 초 단위, 사람이 초시계로 직접 측정), 이동 경로의 길이(cm 단위, EthoVision XT라는 동물행동 분석 소프트웨어로 영상에서 자동 계산), 그리고 경로 길이를 레이턴시로 나눈 속도(cm/s)예요. 소프트웨어가 가끔 게코가 발판에 도착해도 시간 측정을 멈추지 않는 오류가 있어서, 레이턴시는 초시계로 잰 값을 그대로 썼다고 해요. 통계는 R의 선형 혼합모형(linear mixed-effects model)으로 분석했고, 개체 ID를 무작위 요인으로 넣어 개체별 차이를 통제했어요. 세 값 모두 자연로그(ln)를 씌워 변환한 뒤 모형에 넣었기 때문에, 잠시 뒤에 나올 표의 계수도 cm가 아니라 로그 눈금 위의 값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좋아요.
결과: 두 달 뒤에는 찾아갔고, 여섯 달째엔 제자리로
먼저 학습이 실제로 일어났는지부터 봐야겠죠. 경로 길이는 훈련이 진행될수록 확실히 짧아졌어요(Figure 3a). 터치 횟수(F=280.49, p<0.0001)와 훈련 단계(F=24.157, p<0.0001)가 유의미한 변수였고, 반면 몸무게(p=0.282)와 출발 위치(p=0.0586)는 경로 길이 모형에서 유의미하지 않아 최종 모형에서 빠졌어요.
핵심은 그다음이에요. 논문은 S-훈련(맨 처음 3회 시행)을 기준값으로 놓고 각 단계의 경로 길이를 비교했는데, 딱 한 구간만 빼고 나머지 단계가 S-훈련보다 짧았다고 정리했어요. 그 유일한 예외가 바로 여섯 달째 재훈련의 첫 3회 시행(S-기억테스트2)이에요. 여섯 달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물미로에 넣었더니, 경로 길이가 맨 처음 훈련받던 때와 사실상 구별되지 않는 수준이었다는 뜻이죠. 다만 이 “나머지 전부”라는 정리에는 조건이 하나 붙는데, 표를 보고 나서 짚을게요.
아래 표는 원문 Table 2(경로 길이 모형의 계수, S-훈련을 기준값으로 삼은 결과)를 옮긴 거예요.
| 비교 구간(S-훈련 대비) | 계수(추정값) | 95% 신뢰구간 | 표준오차 | t값 | p값 |
|---|---|---|---|---|---|
| F-훈련(첫 훈련 마지막 3회) | -0.4015 | -0.595, -0.208 | 0.099 | -4.07 | 0.0001 |
| Memory test 1(2개월 후) | -0.275 | -0.474, -0.076 | 0.101 | -2.71 | 0.0069 |
| S-기억테스트2(6개월 후, 재훈련 시작) | -0.0136 | -0.207, 0.179 | 0.098 | -0.14 | 0.8903 |
| F-기억테스트2(6개월 후, 재훈련 마지막) | -0.962 | -1.179, -0.745 | 0.111 | -8.70 | <0.0001 |
F-훈련·Memory test 1·F-기억테스트2는 모두 S-훈련보다 계수가 마이너스로 나왔고, S-기억테스트2만 계수가 거의 0(-0.0136)이고 p값도 0.89예요. 신뢰구간도 S-기억테스트2만 0을 넉넉히 품고 있어요(-0.207에서 0.179).
여기서 한 번 멈춰서 볼 것
그런데 위 표는 다중비교를 보정하지 않은 모형 계수예요. 논문은 같은 자료에 튜키(Tukey) 사후검정을 따로 돌려 Table 1에 실었는데, 그쪽 p값은 조금 달라요. 옮겨 볼게요.
| 비교 쌍(경로 길이) | 추정값 | 표준오차 | t비 | 보정 p값 |
|---|---|---|---|---|
| S-훈련 vs F-기억테스트2 | 0.962 | 0.111 | 8.70 | <0.0001 |
| S-훈련 vs F-훈련 | 0.4015 | 0.099 | 4.07 | 0.0005 |
| S-훈련 vs Memory test 1 | 0.275 | 0.101 | 2.71 | 0.0535 |
| S-훈련 vs S-기억테스트2 | 0.0136 | 0.098 | 0.14 | 0.9999 |
| F-훈련 vs Memory test 1 | -0.1264 | 0.098 | -1.28 | 0.7011 |
| F-훈련 vs S-기억테스트2 | -0.3879 | 0.099 | -3.91 | 0.0010 |
| Memory test 1 vs S-기억테스트2 | -0.2614 | 0.102 | -2.57 | 0.0769 |
두 표를 같이 놓고 보면 이렇게 정리돼요.
- 훈련으로 학습이 일어난 것은 분명해요. S-훈련과 F-훈련의 차이는 보정 후에도 p=0.0005로 확실해요.
- 두 달 뒤에도 기억 유지와 일치하는 성적이 관찰됐어요. Memory test 1은 훈련 막바지와 차이가 검출되지 않았고(p=0.7011), 첫 훈련 첫머리보다 경로가 짧다는 비교는 튜키 보정 후 p=0.0535였어요. 저자들은 이를 2개월 뒤에도 학습 정보를 기억한 결과로 해석했지만, 첫 훈련보다 개선됐다는 비교는 통상적인 0.05 기준을 조금 넘었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해요.
- 여섯 달째는 첫 훈련과 구별되지 않았어요. S-훈련 대비 p=0.9999예요. 다만 차이를 못 찾았다는 것 자체가 “두 상태가 같다”거나 “기억이 0이 됐다”는 증명은 아니에요. 두 조건이 같음을 적극적으로 보이려면 동등성 검정 같은 별도 절차가 필요한데 논문에는 없어요.
- 대신 다른 방향의 증거는 있어요. 여섯 달째 첫머리는 훈련 막바지(p=0.001)보다 확실히 경로가 길었고, 뒤에 나올 레이턴시에서는 첫 훈련 첫머리보다도 유의미하게 오래 걸렸어요(p=0.0087). 성적이 학습 전 수준 쪽으로 되돌아갔다는 서술까지는 자료가 받쳐 준다고 볼 수 있어요(여기서 말하는 학습 전 수준은 훈련 첫 3회의 성적을 가리켜요).
한 가지 더 붙이면, Memory test 1은 3회 시행을 묶어 평가했기 때문에 그 3회 안에서 다시 학습이 일어난 몫이 섞여 들어갈 수 있어요. 첫 1회만 따로 보는 프로브 시험(probe test)이 아니라서, 순수한 회상만 잰 값이라고 하기는 어려워요.
레이턴시(발판을 찾기까지 걸린 시간)는 조금 다른 패턴을 보였어요. 출발 위치(F=5.406, p=0.0204), 터치 횟수(F=350.221, p<0.0001), 훈련 단계(F=10.228, p<0.0001), 몸무게(F=6.729, p=0.0097)가 모두 유의미했는데, 단계별 비교에서는 S-기억테스트2만 유별났어요. S-기억테스트2의 레이턴시는 S-훈련보다도 유의미하게 길었고(p=0.0087), 훈련 막바지(p<0.0001)와 Memory test 1(p<0.0001)보다도 길었어요. 반대로 나머지 단계들끼리는 서로 차이가 없었어요. 특히 S-훈련과 F-훈련의 레이턴시 차이도 유의미하지 않았는데(p=0.4285), 다시 말해 레이턴시만 봐서는 학습이 일어났다는 것조차 잡히지 않았다는 뜻이에요. 연구팀은 이걸 “레이턴시는 학습·기억보다 그날그날의 동기(의욕) 상태를 더 많이 반영하는 지표”라서 그렇다고 해석하고, 학습 판정은 경로 길이 쪽을 주된 지표로 삼았어요. 논문은 두 값의 상관을 두고 “그렇게 촘촘하지는 않다(not so tight)”고 적었어요(r=0.723). 상관 자체는 꽤 강한 편이지만, 두 지표가 같은 것을 재고 있다고 보기에는 어긋나는 몫이 있다는 뜻이에요.
이건 앞에서 잠깐 말한 문제와도 이어져요. 물미로는 냄새와 온도 단서의 이용을 크게 줄여 주지만, 물 위에서 어떻게 움직이느냐에는 의욕과 체중까지 얽혀 들어와요. 그래서 이 실험이 잰 것을 “시각 기억만”이라고 말할 수는 없고, 연구팀도 지표별로 다르게 나온 결과를 그 점으로 설명했어요.
속도(cm/s)는 전체적으로 갈수록 느려지는 경향을 보였고, 특히 마지막 F-기억테스트2 구간에서 유의미하게 느려졌어요(Figure 3c). 연구팀은 이걸 기억력 저하가 아니라 실험이 길어지면서 의욕이 떨어진 결과로 해석했어요. 실제로 일부 개체는 물 위에 가만히 떠 있는 “부동 전략”을 택하기도 했는데, 이건 의욕 저하일 수도 있고 에너지를 아끼려는 전략일 수도 있다고 봤어요.

왜 여섯 달 만에 제자리로 돌아갔을까: 저자들의 계절 가설
여기서부터는 결과가 아니라 해석이에요. 미리 못박아 둘 게 있는데, 이 연구는 계절을 조작하거나 계절 조건이 다른 집단을 비교한 실험이 아니에요. 게코들은 실내 사육실에서 26-30도로 유지되며 지냈고, 겨울에는 난방으로 온도를 맞췄어요. 실제로 측정된 것은 “2개월 공백 뒤의 성적”과 “6개월 공백 뒤의 성적” 두 가지뿐이에요. 아래 이야기는 그 차이에 저자들이 붙인 생태학적 가설이고, 논문 안에서 검증된 내용이 아니에요.
연구팀은 이 결과를 레오파드게코가 사는 반사막(semi-desert) 환경과 연결해서 설명했어요. 두 달 정도의 기억은 한 번의 번식기(breeding season) 안에서 일어나는 단기적인 환경 변화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는 기간이라는 거예요. 반면 여섯 달째, 즉 겨울을 지나면서 생기는 기억 손실은 계절이 바뀌면서 서식 환경 자체가 크게 달라지는 것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봤어요. 논문이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파키스탄 등 레오파드게코 서식지는 겨울에서 봄 사이 내리는 비로 반사막 지형이 상당히 변형될 수 있다고 해요.
여기에 또 하나의 요인으로 겨울철 활동성 저하를 들었어요. 겨울에는 레오파드게코가 활동량 자체가 줄어들고, 그러면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빈도도 낮아지니까 “기억을 자꾸 꺼내 쓰면서 다지는” 기회, 즉 저자들 표현으로는 “memory jogging(기억 환기)”이 줄어든다는 거예요. 사람으로 치면 오랫동안 안 쓰던 길을 잊어버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겠죠.
다만 이 가설은 논문 저자들도 스스로 “실제 야외 조건에서 검증이 필요한 가설”이라고 못박아 뒀어요. 실험실 조건에서 나온 결과를 곧바로 야생의 계절 변화와 연결 짓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이 실험이 겨울철 활동성 저하나 계절 강우의 효과를 직접 재 본 적은 없다는 점을 기억해 두면 좋겠어요.
다른 파충류들은 얼마나 오래 기억할까
논문의 논의(discussion) 부분에서는 다른 파충류들의 장기기억 사례도 폭넓게 다뤘어요. 보고된 유지 기간만 늘어놓고 보면 레오파드게코 쪽이 눈에 띄게 짧아요.
| 종 | 실험 과제 | 기억의 종류 | 보고된 결과 |
|---|---|---|---|
| 레오파드게코(이번 논문) | 물미로에서 숨은 발판 위치 찾기 | 공간 기억 | 2개월 뒤에는 기억 유지와 일치하는 성적, 6개월 뒤 재훈련 첫 3회는 첫 훈련 첫머리와 구별되지 않음 |
| 붉은배거북(Pseudemys nelsoni) | 두 갈래 중 먹이가 있는 병 고르기 | 시각 변별 | 7.5개월 뒤 정답률 71-81% 유지, 36개월 뒤에도 기억 |
| 붉은발거북(Chelonoidis carbonarius) | 색 단서와 먹이 보상의 연합 | 시각 변별 | 18개월 뒤에도 보상과 연결된 색을 회상 |
| 알다브라땅거북(Aldabrachelys gigantea) | 색 변별(조작적 조건화) | 시각 변별 | 9년 뒤 3마리 모두 과제 자체에는 즉시 반응했지만, 색 변별은 다시 배워야 했음 |
| 왕도마뱀류(Varanus prasinus, V. mertensi)·과테말라독도마뱀(Heloderma charlesbogerti) | 복잡한 먹이 꺼내기 문제해결 | 절차 기억(방법의 기억) | 20개월 뒤 더 짧은 시간과 더 적은 시행으로 통과 |
다만 이 표를 “기억력 순위표”로 읽으면 안 돼요. 과제도 보상도 훈련 횟수도 성공 기준도 종마다 전부 다르거든요. 특히 왕도마뱀·독도마뱀 사례는 “숨은 장소를 기억했다”가 아니라 “먹이 상자를 여는 방법을 기억했다”는 절차 기억이라 이번 물미로 과제와 성격이 달라요. 거북과의 비교는 논문 스스로도 한계를 밝혀 뒀고요. 정확히 말하면 레오파드게코에서 보고된 유지 기간이 짧아 보이지만, 과제가 달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정도예요.
연구팀은 이 차이를 뇌 크기와 연결해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어요. 파충류의 뇌는 조류나 포유류에 비하면 뉴런 밀도가 훨씬 낮지만, 그래도 몸집이 큰 종일수록 뇌의 절대 뉴런 수는 많고, 그것이 장기기억 용량과 관련됐을 수 있다는 선행 연구(Kverková 등, 2022)를 끌어왔어요. 레오파드게코도 사육 하에서 28년 넘게 사는 장수 동물이지만(AnAge 데이터베이스 기준), 몸집이 작아 절대 뉴런 수가 적다 보니 장기기억에서 불리할 수 있다는 거예요. 논문 표현도 “이론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에 머물러 있고, 이번 실험이 뉴런 수를 재거나 종을 나란히 같은 과제로 시험한 것은 아니에요. 즉 검증된 인과가 아니라 저자들이 내놓은 설명 가설이에요. 거북과의 비교도 참고 정도로만 받아들이는 게 좋은데, 거북은 애초에 유린목(有鱗目, 도마뱀·뱀이 속한 분류군)이 아니고 수명 자체도 훨씬 길어서(붉은바다거북 기준 약 80년) 단순 비교가 어렵다는 점을 논문도 명시했어요.
크레도 이런 인지 능력을 가질까?
여기서 다시 한번 짚고 싶은 게, 이 논문은 어디까지나 레오파드게코를 대상으로 한 연구라는 점이에요. 크레와 레오파드게코는 둘 다 야행성 도마뱀붙이류이고 사육 환경도 비슷하게 꾸미는 경우가 많지만, 인지 능력이 종마다 크게 다를 수 있다는 건 이 논문의 논의 부분에서 다룬 여러 파충류 사례(거북과 도마뱀붙이류 사이의 큰 차이, 왕도마뱀류와 소형 게코류 사이의 차이)만 봐도 짐작할 수 있어요.
그렇다고 크레에게 아예 무관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크레도 야행성이고 냄새와 촉각에 기대는 부분이 있지만, 게코 3종의 색각을 실험한 논문에서 다뤘듯 낯익은 것과 낯선 것을 구별하는 시각 인지도 갖고 있어요. “크레도 물미로 같은 실험에서 공간을 학습하고, 그 기억을 몇 달씩 유지할 수 있을까?”는 아직 아무도 직접 확인하지 않은, 그야말로 열린 질문이에요. 사육장을 재배치했을 때 크레가 새 환경에 얼마나 빨리 적응하는지, 오랫동안 못 봤던 은신처 위치를 다시 찾아가는지 같은 일상적인 관찰이 오히려 이런 질문에 실마리를 줄 수도 있겠다 싶어요.
마무리
정리하면 이 논문은 레오파드게코가 물미로에서 공간 과제를 학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어요. 훈련 첫머리와 마지막의 경로 길이 차이가 보정 후에도 뚜렷했으니까요. 두 달 공백 뒤 성적은 관측값상 훈련 막바지와 비슷했고, 여섯 달째 재훈련 첫 3회에서는 경로 길이가 첫 훈련 첫머리와 구별되지 않았고, 재훈련 30회를 거치면서 다시 짧아졌어요. 저자들은 이 패턴이 번식기 정도의 단기 변화는 버티되 겨울을 지나는 계절 변화 앞에서는 무너지는, 서식 환경에 맞춰진 기억 전략일 수 있다는 가설을 제시했고요.
다시 강조하면 계절 부분은 검증된 결론이 아니라 가설이에요. 그리고 실험이 실제로 보인 것도 “단계별 성적 차이”까지예요. 참고로 두 기억 테스트 사이(Memory test 1과 여섯 달째 첫머리)의 차이는 레이턴시에서는 뚜렷했지만(p<0.0001), 경로 길이에서는 튜키 보정 후 p=0.0769로 통상적인 기준에 닿지 않았어요.
마지막으로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게 있어요. 이 결과를 “여섯 달이면 사육장 구조를 잊는다”로 옮겨 읽지는 않았으면 해요. 물미로는 물에 빠진 동물이 발판을 찾아 나가는, 상당히 특수하고 스트레스가 큰 과제예요. 매일 오가는 사육장 안에서는 냄새와 촉감 같은 단서가 그대로 살아 있고, 은신처와 물그릇 위치를 계속 다시 쓰면서 기억을 환기하게 되니 조건이 아주 달라요. 이 논문이 주는 것은 “파충류의 공간 기억에도 유효기간 비슷한 것이 있을 수 있다”는 힌트 정도이고, 그 힌트가 크레에게도 통할지는 아직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어요.
원문은 Landová, E.; Chomik, A.; Vobrubová, B.; Hruška Hášová, T.; Voňavková, M.; Frynta, D.; Frýdlová, P. “Memory in Leopard Geckos (Eublepharis macularius) in a Morris Water Maze Task.” Animals 2025, 15(14), 2014. https://doi.org/10.3390/ani15142014에서 볼 수 있어요. 본문의 그림(Figure 1, 2, 3)은 위 논문에서 그대로 가져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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