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장을 돌려 썼을 뿐인데: 크레 무리를 덮친 기생충 감염 사건
크레(크레스티드 게코, 공식 국명 속눈썹도마뱀붙이, 흔히 볏도마뱀붙이라고도 해요, 학명 Correlophus ciliatus Guichenot, 1866)는 원래 기생충 보고가 거의 없는 종이에요. 야생 개체군에 대한 기생충 기록조차 없을 정도예요. 그런데 2020년 학술지 Parasitology에 실린 논문 한 편이 이례적인 사례를 보고했어요. 호주 찰스스터트대학교와 홍콩 오션파크가 공동으로 조사한 내용인데, 사육 중이던 크레 무리가 잇따라 앓다 죽었고 그 몸에서 나온 기생충이 크레에게서는 보고된 적이 없는 종이었다는 거예요. 이 글은 그 논문을 읽고 정리한 내용이에요.
먼저 밝혀 둘 게 있어요. 이 논문은 사육 시설 한 곳에서 일어난 사건 하나를 자세히 기록한 증례 보고예요. 여러 시설을 조사해 통계를 낸 연구가 아니라서, 여기서 나온 사실을 “크레는 이 기생충에 잘 걸린다”거나 “이런 일이 흔하다”는 이야기로 바로 옮겨 읽으면 안 돼요. 어디까지가 논문이 실제로 확인한 것이고 어디부터가 추정인지, 본문에서 그때그때 갈라서 적을게요.

사육장을 이어서 썼던 두 종의 게코
사건이 벌어진 곳은 홍콩 오션파크 아쿠아리움이에요. 2015년, 이곳은 크레 10마리를 들였어요. 캐나다의 한 브리더(뉴칼레도니아 원산 파충류만 전문으로 다루는 곳)에게서 4마리, 독일의 한 펫숍(여러 파충류를 함께 취급하는 곳)에서 6마리를 각각 합법적으로 구입했어요. 이 10마리를 무작위로 수컷 1마리와 암컷 4마리씩 두 그룹으로 나눠, 사육장 두 개에 따로 사육했어요. 구입처와 상관없이 무작위로 나눴다는 점이 나중에 감염원을 따질 때 다시 나와요(어느 사육장에 어느 구입처 개체가 몇 마리씩 들어갔는지까지는 논문에 적혀 있지 않아요). 먹이는 게코용으로 나온 상업 배합사료(Repashy, Pangea)를 기본으로 했고, 여기에 가끔 사 온 귀뚜라미와 시설에서 직접 번식시킨 바퀴벌레를 곁들였어요.
문제는 2016년에 시작됐어요. 두 크레 그룹을 사육장 하나로 합치면서, 비게 된 다른 사육장에는 마다가스카르에서 야생 포획된 이끼도마뱀붙이(Uroplatus sikorae Boettger) 무리를 새로 들인 거예요. 이끼도마뱀붙이는 나무껍질과 거의 구별이 안 되는 위장 무늬로 유명한 마다가스카르 고유종 도마뱀붙이인데, 크레와는 과(科)부터 다른 무리예요(크레는 Diplodactylidae, 이끼도마뱀붙이는 Gekkonidae에 속해요). 한 가지 짚어 둘 건, 두 종이 한 사육장에서 동시에 산 적은 없다는 점이에요. 크레가 나간 자리에 이끼도마뱀붙이가 들어온, 순서대로 돌려 쓴 관계였어요.
그런데 이 이끼도마뱀붙이들이 들어온 지 몇 주 만에 전부 죽고 말았어요. 사육 담당자가 살펴봤을 때 기생충 감염 같은 뚜렷한 징후가 없었고, 사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어요. 이 개체들에게서 기생충을 실제로 검출했다는 기록은 논문에 없어요. 뒤에 나올 감염원 추정이 직접 증거가 아니라 정황에 기댄 이야기인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사육장은 소독하지 않고 물로만 씻어낸 뒤 크레를 다시 그 자리로 옮겼어요. 이후로도 번식 목적으로 크레들이 두 사육장을 오갔고요. 아래 표로 정리하면 이래요.
| 시기 | 사육장 상황 |
|---|---|
| 2015년 | 캐나다(4마리)·독일(6마리)에서 구입한 크레 10마리를 무작위로 수컷 1·암컷 4씩 두 그룹으로 나눠, 사육장 두 개에 분리 사육 시작 |
| 2016년 | 크레 두 그룹을 사육장 하나로 합침. 비워진 다른 사육장에는 야생 포획 이끼도마뱀붙이 무리를 새로 들임 |
| 2016년, 몇 주 뒤 | 이끼도마뱀붙이가 전부 폐사(뚜렷한 감염 징후 없음, 사인 불명). 사육장과 안의 구조물을 소독 없이 물로만 세척하고 며칠 만에 크레를 다시 이동. 이후 번식 목적으로 두 사육장 사이에 크레를 계속 오가며 사육 |
| 크레가 돌아간 이듬해 | 이끼도마뱀붙이가 머물렀던 사육장의 크레 5마리가 짧은 기간에 걸쳐 잇따라 앓다 폐사 |
| 2018년 7월 | 냉동 보관해 둔 사체를 오션파크 야생동물 보전재단 부속병원(OPCFVH)에 부검 의뢰 |
부검에서 나온 것
부검 결과, 내장은 가볍게 자가분해(사후에 조직이 스스로 분해되는 현상)가 진행돼 조직검사까지는 어려웠어요. 하지만 큰 선충(가늘고 긴 원통형 몸을 가진 기생충, 흔히 “회충”이라 부르는 무리)들이 몸 여러 곳에서 발견됐어요. 체강(내장이 들어 있는 몸속 빈 공간) 안쪽은 물론이고 피부 밑, 간과 소화관을 뚫고 지나간 흔적, 심지어 눈구멍과 고막, 피부를 뚫고 밖으로 나온 개체까지 있었어요.
살아 있는 동안 겉으로 드러난 신호는 피부 밑에 비치는 기생충 정도였고, 그마저 이따금 피부를 뚫고 나오는 식이었어요. 식욕이 떨어지고 불편해 보이다가 죽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무 낌새 없이 그냥 죽은 채 발견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논문은 적었어요.
다음 사진은 기생충이 피부 밖으로 나온 모습이에요. 논문에 실린 사진 중 비교적 덜 자극적인 한 장만 골랐어요.

이 논문에서 함께 확인된 두 번째 사육장(원래부터 크레만 사육하던 쪽)의 크레 한 마리에서도 피부 밑에서 움직이는 선충 2마리가 발견됐어요. 외과적으로 제거했는데, 이 개체의 치료 경과는 아래에서 따로 다룰게요. 이 두 번째 사육장의 나머지 크레들은 감염이나 이상 징후를 보이지 않았어요.
전체적으로 50마리 넘는 선충이 수거됐는데, 전부 소화관 바깥(피부 밑이나 체강)에서 나온 개체였어요. 다만 사체가 이미 부패가 진행된 상태였고, 분변검사에서도 양성이 나왔기 때문에 일부는 원래 소화관 안에 있다가 빠져나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논문은 밝혔어요.
몸속에서 나온 기생충의 정체
수거된 선충 중 13마리(성체 수컷 3마리, 미성숙 암컷 9마리, 4령 유충 1마리)를 광학현미경으로 살펴봤고, 그중 수컷 1마리와 암컷 1마리는 주사전자현미경(SEM)으로 표면 구조까지 확인했어요. 결과는 전부 Hexametra angusticaecoides Chabaud & Brygoo, 1960이라는 종이었어요. 회충과(Ascarididae)에 속하는 선충으로, 원래 마다가스카르의 카멜레온에서 처음 기재된 종이에요.
특이한 점이 두 가지 있었어요. 첫째, 조사한 암컷 9마리 중 알을 가진 개체가 하나도 없었어요. 둘째, 유전자 분석(ITS라는 리보솜 DNA의 특정 구간을 증폭해 염기서열을 읽는 방법) 결과, 사육장에서 나온 수컷·암컷·유충의 서열이 전부 동일했어요. 감염에 관여한 선충이 한 종뿐이었다는 뜻이라고 논문은 밝혔어요. 물론 이건 수거해서 분석한 표본들을 두고 한 이야기예요.
이 유전자 서열은 Hexametra속(屬) 전체를 통틀어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분자 데이터이기도 해요(미국 국립생물정보센터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GenBank에 등록번호 MN876031-5로 등록). 계통분석에서는 다른 육상 회충류가 이루는 무리의 자매군(계통수에서 바로 옆으로 갈라져 나온 가지)에 놓였고, 비교 대상 중 가장 가까운 Toxascaris leonina와도 염기서열이 41.2%나 달랐어요. 다만 이 41.2%라는 값을 곧이곧대로 “그만큼 멀다”로 읽기는 어려워요. 논문 자신이 밝혔듯 육상 동물에 붙는 회충류의 완전한 ITS 서열이 아직 거의 없어서, 가까운 속끼리 제대로 견줘 볼 상대가 부족한 상태거든요.
전문적으로 설명하면, 이 결과는 크레가 H. angusticaecoides의 원래 숙주(자연 상태에서 그 기생충이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대상 동물)가 아닐 가능성을 뒷받침해요. 쉽게 말하면, 이 기생충 입장에서 크레는 “원래 살던 집”이 아니라 “얼떨결에 들어간 낯선 집”이었다는 거예요. 낯선 숙주 안에서는 소화관에 자리를 잡고 알을 낳는 정상적인 생활사를 진행하지 못하고, 대신 몸 여기저기를 헤매듯 이동하다가 장기를 뚫고 피부 밖으로까지 나온 걸로 보여요. 논문은 이렇게 짝짓기할 기회조차 없이 계속 이동만 하다 보니 암컷들이 알을 갖지 못했을 거라고 추정했어요. 비슷한 일이 다른 데서도 관찰된 적이 있어요. 같은 속의 Hexametra quadricornis를 뱀에 실험적으로 감염시켰더니 유충이 체강 안에서 성체까지는 자랐지만 끝내 장에 들어가지 못했고, 암컷은 알을 갖지 못했거든요.
이 왕성한 이동성 자체는 이 기생충이 일으킨 병증과 폐사에서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논문은 짚었어요. 다만 사체의 조직이 이미 가볍게 자가분해돼 조직검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느 장기가 어떻게 망가져 죽음에 이르렀는지를 조직 수준에서 확인한 건 아니에요. 참고로 크레의 먹이는 게코 전용으로 배합된 사료였기 때문에, 영양 부족이 감염을 악화시켰을 가능성은 낮다고 봤어요.
치료 사례: 한 마리는 살아남았다
두 번째 사육장(이끼도마뱀붙이가 머문 적 없는 쪽)에서 피부 밑 선충이 발견된 크레는 다행히 치료를 받고 살아남았어요. 경과는 이랬어요.
- 피부 밑 선충 2마리를 외과적으로 제거
- 구충제 펜벤다졸(fenbendazole)을 25mg/kg, 이어서 50mg/kg 용량으로 투여했지만 분변검사에서 여전히 양성
- 다시 피란텔(pyrantel) 10mg/kg 투여, 그런데 피부 밑에 선충 2마리가 또 나타나 다시 외과적으로 제거
- 마지막으로 레바미솔(levamisole) 10mg/kg을 한 번 경구 투여
이 마지막 레바미솔 투여 후 이 크레는 10-15일 동안 밥을 잘 안 먹고 축 처지는 부작용을 겪었어요. 다행히 이후 완전히 회복해서, 논문 작성 시점까지 건강한 상태를 유지했어요.
여기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처음 쓴 구충제만으로는 감염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사실까지예요. 이걸 “이 기생충은 약이 잘 안 듣는다”로 넓혀 읽으면 지나쳐요. 소화관을 벗어나 피부 밑이나 체강을 돌아다니는 선충한테는 약이 충분히 닿지 않았을 수도 있고, 투약 간격이나 용량, 그사이의 재감염 같은 다른 요인이 겹쳤을 수도 있거든요. 개체 한 마리의 경과만으로는 이 중 무엇이었는지 가릴 수 없고, 논문도 가리지 않았어요. 다만 이 사례가 분명히 보여 주는 건, 구충 치료가 약 한 번 먹인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라 수의사의 판단 아래 경과를 지켜보며 조정해야 하는 과정이라는 점이에요.
감염원은 어디였을까
논문이 가장 공들여 다룬 부분이 바로 이거예요. 다만 시작부터 논문이 인정한 한계가 있어요. 개체를 들여온 경로가 여럿이고, 사육장에 여러 종이 거쳐 갔고, 파충류에 붙는 선충 대부분은 생활사조차 제대로 밝혀져 있지 않아요. 그래서 감염원을 확정하는 건 애초에 어려운 일이라고 논문은 못 박았어요. 아래 내용은 그 전제 위에서 후보를 좁혀 간 과정이에요. 후보는 크게 셋이었어요. 원래 크레를 구입한 브리더나 펫숍, 앞서 그 사육장을 썼던 이끼도마뱀붙이, 아니면 먹이로 준 귀뚜라미나 바퀴벌레.
첫 번째 후보부터 볼게요. H. angusticaecoides는 세계 여러 지역의 파충류에서 발견되는 종이라, 크레가 처음부터 감염된 채로 들어왔을 가능성 자체는 있어요. 그런데 논문은 이 가능성이 낮다고 봤어요. 심하게 감염된 건 이끼도마뱀붙이가 머물렀던 사육장의 크레들뿐이었고, 다른 사육장에서는 한 마리(위에서 다룬 치료 사례)만 가볍게 감염됐거든요. 앞에서 본 대로 크레 10마리는 구입처와 상관없이 무작위로 두 그룹에 나눴으니, 처음부터 들어온 감염이 한쪽 사육장에만 몰릴 이유를 구입처에서 찾기는 어려워요.
그래도 이건 “배제됐다”기보다 “가능성이 낮다”는 쪽이에요. 기생충 감염은 개체마다 감염량과 발병 시점이 제각각일 수 있고, 두 사육장 사이로 크레들이 계속 오갔으니 발생 양상만으로 구입처를 완전히 지워 버릴 수는 없어요.
그래서 남은 후보는 이끼도마뱀붙이 아니면 먹이용 곤충이에요. 논문은 이끼도마뱀붙이 쪽에 무게를 실었어요. 근거는 이래요.
- Hexametra속에 속한 여러 종(이번에 나온 H. angusticaecoides도 포함)이 마다가스카르의 파충류에서 처음 기재됐다는 점. 이건 이 기생충 무리와 마다가스카르 파충류의 연관을 보여 주는 정황이에요. 최초 기재 지역이 곧 이 기생충의 진화적 기원지나 원래 분포지라는 뜻은 아니에요.
- 함께 사육했던 이끼도마뱀붙이가 야생에서 포획한 개체였다는 점. 야생 개체는 눈에 띄는 증상 없이도 기생충을 몸에 지니고 있는(불현성 감염) 경우가 흔해요.
- 이끼도마뱀붙이들이 시설에 들어온 지 몇 주 만에 뚜렷한 감염 징후 없이 급사했다는 점도, 포획과 새 환경 적응 과정의 스트레스가 원래 갖고 있던 불현성 감염을 죽음에 이를 만큼 악화시켰을 가능성과 맞아떨어져요.
감염 경로 자체에 대해서는 오래된 실험 연구가 하나 있어요(Chabaud et al., 1962). 마다가스카르에서 잡은 카멜레온(Chamaeleo pardalis)을 써서 H. angusticaecoides의 알과 유충으로 여러 감염 실험을 한 연구인데, 곤충·올챙이·생쥐·카멜레온을 거치는 경로로 기생충을 옮기는 데 성공했고 연구진은 이 기생충의 “생리적 가능성이 매우 넓다”고 결론지었어요. 여기서 오해하기 쉬운 대목을 짚어 둘게요. 이 목록은 “이 동물들이 전부 이 기생충의 정식 숙주”라는 뜻이 아니에요. 어느 쪽이 유충을 키워 주는 중간숙주이고 어느 쪽이 그냥 실어 나르는 운반숙주인지, 각 동물에서 유충이 어느 단계까지 자랐는지는 이번 논문이 정리해 주지 않아요. 게다가 실험에 쓴 카멜레온은 원래 어떤 기생충을 지녔는지 알 수 없는 야생 개체였고요. 그러니 “여러 동물을 거치는 경로가 실험에서 실제로 통했다” 정도로 받아들이는 게 맞아요. 참고로 그 실험에서 카멜레온 한 마리는 피부 밑과 체강의 유충, 장 속의 성충을 동시에 갖고 있었어요.
그러니 남은 경로도 여러 갈래로 열려 있는 셈이에요. 이끼도마뱀붙이가 먹이 곤충을 통해 감염돼 있었을 가능성, 같은 공급원에서 온 먹이 곤충에 크레도 노출됐을 가능성, 이끼도마뱀붙이가 사육장에 배설한 알이 살아남아 크레에게 옮았을 가능성이 모두 남아요. 어느 쪽인지 논문은 가리지 않았어요.
여기서 중요한 대목이 있어요. 사육장을 소독하지 않고 물로만 씻은 뒤 며칠 만에 크레를 다시 들여보냈다는 점이에요. 같은 연구(Chabaud et al., 1962)에 따르면 H. angusticaecoides의 알은 낳은 지 약 15일쯤 지나야 감염력을 갖고, 그때 2기 유충이 알에서 저절로 부화해 나온다고 해요. 물로 헹구는 정도로는 사육장 바닥이나 장식물에 남은 알까지 없애지 못했을 거예요. 알이 언제 배설됐는지는 확인된 바가 없으니 두 경우가 다 가능해요. 크레가 들어갔을 때 이미 감염 단계에 이른 알과 유충이 있었을 수도 있고, 크레가 들어간 뒤에 시간이 지나 그 단계에 이른 것들도 있었을 수 있어요. 어느 쪽이든 남은 알과 유충이 살아남아 새 숙주를 감염시킬 수 있었다고 논문은 봤어요. 게다가 사육장에 계속 공급된 귀뚜라미·바퀴벌레 먹이가 기생충의 생활사를 이어 주는 고리 역할을 했을 수도 있고요.
논문은 최초 감염이 2016년에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고, 그렇다면 이 선충이 사육 환경 안에서 생활사를 완성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적었어요. 여기서 층위를 한 번 갈라 둘게요. 이건 사육장이라는 환경 전체를 두고 한 말이지, 크레 몸속에서 생활사가 돌았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앞서 본 대로 크레에서 나온 암컷들은 알을 갖지 못했으니까요. 환경에 남은 알이나 먹이 곤충처럼 크레 바깥의 고리를 통해 노출이 이어졌으리라는 추정이고, 그 고리를 논문이 직접 확인한 건 아니에요.
다른 파충류에서도 확인된 위험
논문은 Hexametra속 기생충이 크레 외의 다른 파충류에서도 치명적일 수 있다는 기존 보고들을 함께 짚었어요. 먼저 전제 하나. Hexametra는 도마뱀과 뱀에서 드물지 않게 나오는데도, 그 감염으로 죽었다는 보고는 많지 않아요. 아래는 그 많지 않은 사례들이에요.
- 아르헨티나에서 발견된 야생 포획 뱀은 겉보기엔 건강했는데도 며칠 만에 죽었어요. 부검해 보니 다른 종인 Hexametra boddaertii가 100마리 넘게 나왔는데, 작은 개체는 체강에서 큰 개체는 장에서 나왔어요. 구충 시도는 실패했고요.
- 사육 중이던 팬더카멜레온 한 마리는 별다른 병색 없이 갑자기 죽었는데, 위와 장에서 H. angusticaecoides가 발견됐어요.
- 사육 중이던 베일드카멜레온 한 마리는 호흡곤란 증상으로 안락사됐는데, 체강에서 미성숙한 Hexametra 20-30마리가 나왔어요.
공통점은 하나예요. 알아채기가 어려웠다는 것이죠. 뱀과 팬더카멜레온은 뚜렷한 전조 없이 죽었고, 베일드카멜레온은 증상이 드러났을 때 이미 호흡곤란까지 간 상태였어요. 회충류 감염은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비특이적이라(식욕이 떨어지고 체중이 서서히 주는 정도) 알아채기가 어렵거든요. 애초에 파충류의 증상학 자체가 잘 정리돼 있지 않아서 회충류 감염이 얼마나 해로운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도 논문이 함께 짚었어요. 알려진 손상 경로는 두 갈래로 봐요. 숙주에 비해 몸집이 큰 선충이 영양을 가로채는 쪽, 그리고 위장 점막에 파고들거나 유충이 이동하면서 물리적으로 조직을 망가뜨리는 쪽이에요. 파충류가 원래 다양한 기생충을 큰 문제 없이 몸에 지니고 사는 경우가 흔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게 실제 질병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도 논문은 함께 지적했어요.
크레 사육자가 챙길 만한 점
이 사례에서 크레가 감염된 기생충은 크레에게서 보고된 적 없는 종이고, 다른 종의 도마뱀붙이가 쓰던 사육장을 이어 쓰는 과정에서 옮았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게 논문의 판단이에요. 확정된 경로는 아니에요.
이 사건이 보여 주는 실용적인 결론은 전파 경로를 완벽하게 알아낸 뒤에야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 전에 기본 검역과 위생으로 노출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는 거예요. 여러 마리나 여러 종을 함께 키우거나 새 개체를 들인다면 다음 항목을 기본으로 챙겨 보세요.
- 새 개체나 새로운 종은 따로 격리해서 지켜보는 기간(검역)을 둔다. 겉으로 건강해 보여도 불현성 감염 상태일 수 있다는 게 이 사례가 보여 준 대목이에요.
- 종이 다른 파충류끼리는 사육장을 돌려쓰지 않는다. 부득이하게 같은 사육장을 다시 쓴다면, 물로 헹구는 정도가 아니라 확실한 소독·건조 과정을 거친다. 기생충 알은 물로 씻어내는 정도로는 남아 있을 수 있어요.
- 중고 사육장을 들일 때도 같은 원칙을 적용한다. 이전에 어떤 동물이 살았는지 모르는 중고 사육장이라면 더더욱 철저히 소독한 뒤 사용하는 게 안전해요.
- 먹이용 곤충의 출처와 사육 위생도 살펴보세요. 이번 사건에서 먹이 곤충은 실제 감염원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가능한 전파 고리에서 배제되지 않았어요.
- 피부 밑 혹, 식욕 저하, 무기력 같은 신호를 놓치지 않는다. 특히 피부 밑에서 뭔가 움직이는 게 보이거나 만져진다면 바로 파충류 진료가 가능한 수의사를 찾아야 해요.
- 구충제는 자가 처방하지 않는다. 이 사례의 생존 개체도 여러 약을 순서대로 바꿔가며 수의사 관리 아래 치료받았고, 그 과정에서도 부작용을 겪었어요.
이 글은 아래 원 논문을 직접 읽고 참고문헌까지 확인해서 정리했어요.
출처: Barton DP, Martelli P, Luk W, Zhu X, Shamsi S. “Infection of Hexametra angusticaecoides Chabaud & Brygoo, 1960 (Nematoda: Ascarididae) in a population of captive crested geckoes, Correlophus ciliatus Guichenot (Reptilia: Diplodactylidae).” Parasitology. 2020;147(6):673-680. Published online February 12, 2020. https://doi.org/10.1017/S0031182020000219 (PMC 전문: PMC10317624)
본문의 사진(Figure 1(g))은 위 논문에서 그대로 가져왔어요. 첫 사진은 Mossy leaf-tailed gecko (Uroplatus sikorae), Vohimana reserve, Madagascar.jpg by Frank Vassen, CC BY 2.0을 사용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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